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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에서 도시철도 기관사의 자살 문제는 2003년부터 사회적으로 큰 쟁점이 되어 왔다. 서울시에서는 서울시지하철최적근무위원회 등의 사회적 기구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으나, 2016년 또 한명의 기관사가 자살로 생을 마감하면서, 여전히 자살 사태는 현쟁진행형이다. 결과적으로 지하공간에서 장시간 운전 업무를 수행하는 도시철도 승무 노동자들의 노동 실태에 대한 보다 심도 깊은 조사 연구가 시급히 필요한 상황에 이르게 되었고, 이 보고서는 그 결과물이다.

 

 

[요약]

 

철도라는 모빌리티 시스템은 역사적으로 자본주의적 도시화와 맞물려 등장했으며, 이 과정에서 정시성(속도), 기계적 정확성, 반복성, 불변성 등의 속성이 (도시)철도 시스템의 본질이 되었다. 이와 같은 본질적 속성은 현재 정부의 각종 법령, 제도를 통해 강고히 유지되고 있으며, 이는 각 궤도 사업장의 조직 운영원리 및 작업장 관행과 조직문화에 현저히 영향을 미치고 있다. 승무 분야의 노동은 이와 같은 사회, 제도적 맥락에 놓여 있다. 다른 말로 하자면, 승무 노동자들은 도시철도 모빌리티 시스템의 역사성 및 여러 사회적 변화, 조직적 변화, 기계·물리적 환경 변화 속에서 일하고 있으며, 이러한 변화 속에서 노동과정 역시 변화하고 있다. 더욱이 안전에 대한 사회적 민감도가 크게 증가하고 있는 현실에서, 이는 도시철도 시스템의 최말단에서 일하는 승무 노동자들에게 고스란히 업무 부담감으로 작용하고 있다. 

 

작업 스케줄과 작업량을 통제할 권한이 부여되지 않는 도시철도 승무 노동의 특성을 요약하자면, 우선 승무 노동자들은 1년 내내 밤낮이 바뀌는 상이한 근무 시간(교번제)을 맞추는 데 신경을 곤두세우며, 그로 인해 대단히 불규칙한 생활 패턴을 감수해야 한다. 차량에 탑승한 이후에는 모든 것이 정해진 계획, 곧 초단위의 시간대별로 정확히 지켜져야 한다. 승무 노동자들의 직무 자율성은 저하될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도시철도는 일반 철도보다 무수히 자주 진행과 정차를 반복하면서 승객을 태워야 한다. 운행 중에는 고도의 집중력이 요구되는데, 이 과정에서 정시성(속도)과 불변성을 해치거나, (아무리 사소해도) 승객 안전을 저해하는 실수나 사고 유발행위를 하게 되면, 조직 내에서 비난과 징계의 대상이 되고 만다. 결과적으로 승무 노동자에게는 나 하나의 실수로 말미암아 전체 지하철이 지연되고, 마비되는 상황이 올 수 있다고 스스로를 강박하는 일상이 반복된다. 도시철도 모빌리티 시스템 내의 어떤 직무와도 확연히 구별되는 도그마가 이들에게 적용된다. 즉 인간임에도 실수가 용납되지 않는 기계화된 ‘주체’가 되라고 요구받는다. 이러한 요구에 부응하지 못하는 노동자는 당장에 쓸데없는 것으로 치부하는 조직문화 속에서 승무 노동자들은 일하고 있다.


그렇지만 도시철도 시스템은 비록 자동화 수준이 더욱 높아지고 있다고는 하나, 최근 사회적으로 이슈가 많이 되고 있는 승강장안전문을 비롯해 여전히 여러 시스템이 불완전한 상태 ― 승객 잘못으로 인한 불완전성과 사고를 포함하여 ― 속에서 작동하고 있다. 기실 이와 같은 도시철도 시스템의 다양한 불완전성은 일선 노동자들, 즉 인간이 보완해 왔다. 특히나 승무 노동자들은 운행 과정의 최말단에서 시스템이 안전하고, 완벽하게 작동하게끔 노력해 왔다. 그런데 직무 자율성이 낮은 노동으로는 이례 상황에 대처하기 어렵다. 결국 정상적 상황에서는 직무 자율성이 바닥이지만, 비상 상황이 발생하면 이때부터 도시철도 조직은 승무 노동자가 자율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할 것을 요구한다. 이때 많은 데이터를 해석하고, 적절한 판단을 내리는 인지 노동(cognitive work)이 필수적이다.


현직 기관사의 도움을 통해 단편적이나마 실제 하루 동안의 근무를 분석한 결과, 여러 가지 양태의 인지 노동이 존재했다. 다양한 인지 노동의 발동, 수행만을 보더라도 승무 노동자들의 역할을 ‘업무 내규’에 나와 있는 것으로만 단순하게 한정지을 수 없다. 이들의 노동은 단순한 육체노동이 아니다. 승무 노동에서의 육체노동은 인지 노동과 끊임없이 연결되어 있다. 경영진과 일부 연구들은 승무 노동을 단순 반복적 노동이라고 규정하지만, 이와 정반대로 승무 노동은 도시철도 전체 시스템과 차량을 감시하면서 수행하는 고도의 인지 노동이 업무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조밀한 간격 속에서 무수히 많은 정차역을 거치는 과정 동안 승무 노동자들은 인지 노동의 집중도를 지속적으로 유지해야만 한다. 


각각의 복합적이고, 다종다기한 이례 상황 속에서 승무 노동자들의 육체노동적, 인지노동적 대처가 일상적으로 발휘되었기에 안전한 지하철의 운행이 가능했다. 즉 전체 도시철도 (기계적) 시스템에 대한 이해 수준을 포함한 이들의 종합적 숙련도에 의해 열차가 운행된다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도시철도 승무 노동을 기계적 자동화의 증가에 따른 탈숙련화 논리로 접근해서는 안된다. 승무 노동은 탈숙련화되어 가는 것이 아니라, 기계 시스템의 변화 속에서 고도로 숙련된 인지 노동이 필수적인 직무인 것이다.

 

금번 연구에서는 전체 8개 도시철도 사업장에서 60여 명을 대상으로 심층인터뷰를 진행했으며, 1,143명의 승무 노동자를 대상으로 노동실태에 대한 의식 조사를 실시하였다. 조사 결과, 승무노동자들은 매 운행에서 수천명의 안전과 생명을 책임지고 있다는 생각으로 업무에 종사하고 있다. 이들이 안전 운행에 관해 느끼는 부담감은 어마어마하다. 그런데 이들은 조직으로부터 그리고 사회로부터 받은 대우가 그다지 좋지 못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복잡한 도시철도 시스템 속에서 이들은 자신들의 숙련을 기본으로, 이례 상황에서의 고장 조치를 포함하여 매순간 매뉴얼에 다 나오지 않는 다양한 인지 노동을 수행하며 안전 운행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럼에도 이들의 역할에 대한 사회적 가치 부여는 열악한 수준이다. 이들은 자신들의 노동을 평가절하하는 조직 내 분위기, 동료 노동자들의 인식으로 인해 자존감을 상실하고 있다. 결국 이들이 업무를 통해 자존감을 다시금 되찾도록 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하나의 부속으로 전락했을 뿐만 아니라 사고가 나면 가장 일차적으로 책임지고 징계를 받는 이들에게 정신적 질병이 생기지 않는 것이 오히려 비정상적인 상황이다. 더구나 대다수 궤도 사업장이 1인 승무로 운영되고 있다. 


한편 승무 노동 특성상 개인주의적 경향이 강화되고 있다는 평가가 많았으며, 승무 노동자 상호 간에 사회적 유대 관계가 약화되는 분위기 속에서 이들은 자신들이 겪는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는 데 주저하고 있었다. 이는 이들 개인의 문제만은 아니다. 정신적 문제에 대해 언급하는 것을 터부시하고, 경제적 효율주의(최소 인력만으로 운행)와 징벌주의에 매몰된 조직 문화 속에서, 승무 노동자들은 아프다고 빠질 수도 없으며, 괜히 말을 꺼내 문제가 있는 사람으로 낙인 찍히는 것도 심히 부담스럽게 여길 수밖에 없다. 결국 이러한 사회적, 조직적, 물리적, 노동과정적 요인들이 승무 노동자들이 정신 및 육체 건강에 크나큰 악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자살 생각을 한 적이 있는 승무 노동자들에게는, 안전에 대한 사회적 요구의 증가, 실수에 대한 사회적 처벌 수위 강화와 같은 사회적 요인이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설문 조사에서 나타났다. 또한 조직적 요인 측면에서는 일하는 회사의 평가가 공정하지 않고, 경쟁을 과도하게 조장하며, 권위적일수록, 그리고 노동조합의 힘이 약하다고 여길수록, 징계가 부담스럽다고 여길수록, 동료들과의 관계가 불편할수록, 고충을 토로할 사람이 없다고 여길수록, 승진 가능성이 낮다고 여길수록 자살 생각을 더 했다. 물리적 요인에서는 업무에 대한 위험 인식이 클수록, 업무 수행지원 시스템에 대한 불만이 클수록, 작업장 환경이 열악하다고 느낄수록 자살생각을 하고 있었다. 노동과정 차원에서는 승무시간이 길고, 업무량이 많다고 느낄수록, 수입이 적다고 여길수록, 다이아에 따른 시간관리가 부담스럽다고 느낄수록, 조직에서 존중과 신임을 못 받는다고 생각할수록, 일에 대한 흥미도 낮을수록 자살 생각을 한 응답자가 많았다. 승무 노동자로서의 자존감이 자살 생각에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이다. 

 

승무 노동자들의 자살 생각 경험에 영향을 주는 요인들을 지적하였는데, 우리 사회는 이미 기관사들의 자살 사태에 직면해 있다. 특히나 서울도시철도공사에 발생한 여러 차례의 불행한 자살 사태 속에서 서울시는 사회적 기구를 구성하고, 이를 통해 여러 대책과 권고안을 제시해 왔다. 


현재까지 진행된 승무원 정신건강 등 지지프로그램에는 2013년에 진행되었던 ‘서울시지하철최적근무위원회’의 활동과 2014년의 ‘기관사 근무환경개선단’ 활동이 있었다. 이 양 논의의 결과는 승무원들의 근무환경을 혁신적으로 개선하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총 32개의 추진과제로 묶여 있다. 그러나 이 중 12개에 대해서만 추진되고 있으며 10개 사항은 추진되고 있지 않다. 즉, 미합의로 남아 있다. 여기에 더하여 10개 과제는 사측에서는 추진이 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는 반면 노조에서는 안 되고 있다고 논란이 있다. 결국 제대로 된 것은 1/3수준에 불과하고 그 또한 대부분 비용이 거의 들지 않는 영역들에 국한되어 있다. 
활동 시작 5년차를 앞 둔 현재에도 개선과제는 덮여 잠을 자고 있다. 개선계획을 제대로 추진하지 않을 계획이었다면 서울시에서는 왜 이런 노·사·민·정 논의기구를 운영했는지에 대해 소명해야 한다. 무늬만 ‘참여형’이라는 속 빈 강정의 거버넌스에는 더 이상 사람들이 참여하지 않게 될 것이다.

 

요컨대 승무 노동자들의 자살 생각 내지 충동은 승무 노동의 본질, 그리고 그것이 생겨나게 된 도시철도라는 모빌리티 시스템의 속성과 상당히 맞닿아 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그동안 우리가 목도해 온 기관사들의 자살 사태는 도시철도라는 모빌리티 시스템을 운영할 수밖에 없는 현대 도시 사회가 초래한 사회적 병폐현상이자 병리현상으로 간주해야 한다. 특히 여기에는 노동자들은 통제와 규율의 대상으로 파악하고, 관리해 왔던 국내 도시철도 작업장의 수직하향적인 군대식 조직문화도 깊숙이 결부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노동조합이 약하다고 여길수록, 노동조합이 나의 노동조건을 개선시킬 수 없다고 여길수록 자살생각을 하고 있다는 지점은 보다 성숙한 작업장 민주주의, 나아가 수평적인 조직 문화가 필요함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현장 인터뷰에서도 같은 철도공사 내에서조차 노동조합의 힘이 센 승무사업소에서는 인격모독적 징계나 통제가 그나마 많지 않지만, 그렇지 못한 곳에서는 범죄자인 것마냥 비난하는 행위가 서슴지 않고 자행되고 있다는 진술이 있었다. 징벌주의를 넘어서고, 전체 도시철도 시스템의 안전문화 개선을 위해서 보다 수평적인 관계로의 전환이 요구된다. 


또한 도시철도라는 모빌리티 시스템을 폐기할 수 없는 조건이라면, 최소한 그것에 내장된, 승무 노동뿐만 아니라 다른 여러 직무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정시 운행 관성을 깨는 노력이 요청된다. 세월호 참사를 비롯해 구의역 사고를 경유하면서 한국 사회의 잠정적인 공통의식은 속도, 정시, 효율보다는 안전과 인간적인 작업장 체제로 급속히 전환되고 있다. 도시철도의 특성상 아예 정시성을 부정할 수 없다면 정시성과 안전성 사이의 최적의 균형점을 찾아가려는 사회적 노력과 궤도 작업 조직 내의 의지가 구체적으로 발현되어야 한다.

 

이와 같은 사회적 흐름과 지금까지의 논의를 바탕으로 승무 노동자의 자살 사태를 예방하고 이들의 정신적, 육체적 건강 수준을 높이기 위한 개선대책을 제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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